본문 바로가기
:: 전시 느낌집

전시 후기 ::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전 '무라카미 좀비'

by sojxn 2023. 2. 4.

 


전시 후기 ::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전 '무라카미 좀비'

'전시 느낌집'에서는 전시 관람 후, 가장 좋았고 기억에 남았던 5개의 작품을 뽑아 후기를 남깁니다. 개인적인 미술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곳입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기록하고 꺼내봅니다. 비슷한 취향인지 나와는 조금 다른 취향인지 한번씩 훑어봐주세요.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좀비

무라카미 다카시, 그 귀여운 꽃 캐릭터?

무라카미 다카시는 너무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작가 이름은 모를지라도 무라카미 플라워는 누구든 알테다. 위대한 팝아트 화가라고 하지만 처음에 느낀 감정은 오타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 나도 선호하는 작가도 아니었고, 자세히 작가에 대해 알아본 적도 없다. 여기저기서 꽃 그림을 볼 때마다 그 작가의 작품이네, 그 귀여운 꽃 캐릭터에.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 '무라카미 좀비'를 관람하고 난 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오타쿠로만 여겨질 작가는 아니었고 역시는 역시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아직 정확히 많이 알지도 못하지만 느낌이지만 말이다.

미리 사전에 작가와 캐릭터에 대한 공부가 좀 필요한 것 같아

부산에서 좀 처럼 보기 힘든 간만에 하는 해외 작가의 대형 전시라 역시 전시 오픈과 동시에 관람객들이 물 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방학기간이라 그럴지 몰라도 평일에도 북적이고, 주말에는 말할 것도 없다. 예상했겠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사람이 많고 정신이 없었다. 입구도 계단 위 바로 왼쪽이라 전시 시작 글을 읽을 정신조차 없이 밀려들어갔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진짜 전시를 보러간다면(단순히 귀여운 플라워들과의 사진촬영이 목적이 아니라면) 미리 작가와 캐릭터에 대한 사전 지식을 쌓아가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뭐 대단한 조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떻게 이 캐릭터가 시작되었고, 이번 전시에서 무슨 스토리로 전개가 되는지 등 간단한 것들 말이다. 그게 없이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에 쓸려 이야기는 없이 정말 귀여움과 기괴함만이 남는 전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면 사실 내가 그랬어서... )

동등하고 평등하다, 슈퍼플랫

서양이 주도하는 현대미술에 비해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미성숙한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한 '왜'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왜'를 일본어로 하면 '도-시테'인데 이를 일본 만화 주인공이 어눌하게 말한 '도보지테'가 그의 캐릭터 도브(DOB)의 기원이라고 한다. 이런 '왜'를 바탕으로 그는 '슈퍼플랫'이라는 정신을 제시한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등이 상하 개념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하고 평평한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연장선으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이후부터는 작업에 변화가 생겼는데, 현대 사회의 불안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귀여웠던 도브는 이제 불안과 혼란, 파괴를 상징하는 괴물로 변화하고 '기괴한 좀비'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무라카미 다카시는 또 다시 새로운 변화를 줬는데, 대재앙에 직면한 인간의 무력함과 예술의 역할,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을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 '무라카미 좀비''에서 잘 담아낸 것 같다. 그리서 섹션을 차례로 보면 '귀여움','기괴함','덧없음'으로 이어진다. 현대사회를 겪으며 변화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닮아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우환 공간에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들과 어우러지는 '원상' 연작이 전시되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이 전시 과정 속에서 기억에 남는 몇 작품을 정리해둘 생각이다.


1. 그리고 나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있다 2014 // 그리고 나서 x6 (빨간 점: 슈퍼플랫 방식) 2012 //그리고 나서×6 (화이트: 슈퍼플랫 방식, 검은색과 빨간색 귀) 2012

무라카미 다카시,그리고 나서

아직 순수하게 웃고 있는 도브의 모습들이 가장 먼저 반겨줬다. 사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727 드래곤> 작품이었는데, 지드래곤의 개인 소장품, 즉 지드래곤 컬렉션이라는 엄청난 이유때문인지 사람들이 드글드글 몰려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보면 이 1번 작품에 <727 드래곤>작품이들어가야 했는데 제대로 못봐서 이 귀여운 도브 친구들이 들어온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만약 집에 무라카미 다카시 이번 전시 작품 중에 하나 들고 와서 방에 걸라고 하면 이 <그리고 나서> 시리즈 친구들을 데리고 올 것 같아서 뽑았다. 팝아트적인 면모가 잘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2.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2014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2014

갑자기 귀엽던 도브들이 탄탄보로 변해버렸다. 이 친구들은 왜 '기괴함'이 아니라 '귀여움'에 있는지 모를정도로 무서웠는데, 왜냐면 모든 탄탄보 작품들이 엄청 컸다. 거의 한 면을 모두 차지하는 캔버스 크기였는데, 잡아먹을 듯한 저 표정이 엄청 무서웠다. 특히 이 작품이 압도적이었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진짜 장난 없을 정도로 세세하게 표현되어있다. 멀리서보면 귀여울지 몰라도 가까이서 보면 모든 그림들이 다 비극적인 느낌이다. 이 것이 진정한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느낌일까?

3. 자이언트 플라워 볼 2008

자이언트 플라워 볼 2008

진짜 솔직히 말해서 기억에 남는 딱 한가지를 꼽으라면 이 <자이언트 플라워 볼>을 안 꼽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번 전시의 거의 메인 포토존이라 사람이 엄청났다. 근데 다른 건 모르겠고 너무 귀여워서 한 참을 뱅글뱅글 돌았다. 전 연령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무라카미 플라워. 언제봐도 기분 좋고 사랑스럽다. 

4.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 2013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 2013

사실 '기괴함' 파트에서 한 작품도 뽑지 못했다. 말 그대로 너무 '기괴'했고, 어떻게 보면 이 삭막한 현실에 똑같이 잔인한 것을 마주하기 싫은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오히려 '덧없음' 섹션이 더 좋았는데,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나한 2013> 이 아닐까 싶다. 전시장 로비 한 가운데에 이 녀석들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고, 이들을 보면 뭔가 영화 '신과 함께'가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생의 마지막에 마주할 것 만 같은 무서운 요괴들이었다. 이 작품은 불교의 금강역사상과 재앙을 주는 요괴를 결합한 작품으로 붉은 요괴는 죽음과 종말을, 푸른 요괴는 탄생과 생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외에도 불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꽤나 재밌었다. 하도 절을 산책삼아 여행을 많이 다녀서 더 가깝게 와닿은 것 같다.

5. 젠 엔소 플래티넘 2018

젠 엔소 플래티넘 2018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작품은 이우환 공간 1층에 있는 <젠 엔소 플래티넘 2018>이다. 잔잔하게 입체감있게 프린트 되어진 해골 문양들과 그 위를 감싸는 원. 앞서 보았던 무라카미 다카시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한 작품들과는 사뭇 달라 더 매력적이었다. 이 작품은 '원상'이라는 이름 아래 연작인데, 붉은색의 작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웃프다, 유머러스하고 귀엽지만 그 속에 가시가 있다

아까 말했듯이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세계는 공부하면 할수록 더 재밌는 것 같다. 알면 알수록 더 슬프고 무섭다. 유머러스하고 화려하지만 그 속에 담긴 꽤나 아픈 가시가 훅훅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단순히 귀여운 꽃 캐릭터로 이미지가 소비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정말 똑똑한 작가였다. 이번 부산시립미술관의 '무라카미 좀비'의 전시가 꽤나 기획과 스토리가 좋아서 또 다시 '무라카미 다카시' 의 새로운 흥행에 불을 붙여주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귀여운 전시가 아닌 이러한 스토리가 더 잘 홍보되면 더욱 팬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더이상 유머러스한 이미지만 소비되는 작가가 아닌 그 속에 진정성이 더 인정받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나도 그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고 애정을 길러봐야겠다.